[새가정] 함께하는 기꺼운 마음, 친구

Ecumenical Journey
작성자
在耳
작성일
2024-02-29 07:34
조회
147
폴란드 브로츠와프의 한 성당, 뗴제의 유럽 모임(Taizé European Youth Meeting) 아침 기도회 시간이었다. 신부님의 부탁을 받고 중보기도 제목 하나를 한국어로 소리 내어 읽었는데,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찬양을 하던 성가대 지휘자의 눈이 살짝 나를 향했다. 예배를 마치고 내게 다가온 그녀가 서툰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폴란드 친구 아샤(Asia)와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는 이 하나 없이 하루를 혼자 꼬박 보낸 뒤였다. 정오 기도회 전, 여유시간에 브로츠와프 시내를 함께 다니며 본인이 다니고 있는 뮤직 아카데미, 브로츠와프에서 제일 유명한 성당, 현지 시장을 소개해 주었다. 시장에서 갓 구운 빵과 커피로 점심을 대신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어를 배웠다는 아샤는 자주 수줍어했고, 짧은 영어로의 소통도 쉽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분명했다. 함께하고 싶어했다.

반나절 동행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지루했던 오후 워크샵까지 함께 듣고 있는 그녀를 보며 조금씩 마음이 뭉클해지기 시작했다. 떼제에서 제공하는 저녁 식사를 마다하고 밖으로 나와 함께 밥을 먹고, 한번 먹으며 절대 잊을 수 없는 폴란드의 특별한 아이스크림 로데(Lody)의 맛까지 섭렵했다. 첫째 날 저녁 기도회 때, 떼제만의 특별한 십자가 기도회는 늦은 시간까지 혼자 남아서 기도할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었다. 하지만 오늘 나에게는 폴란드 친구가 있지 않은가! 살짝 그녀를 쳐다보는데,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도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나즈막히 떼제 찬양을 부르며 거의 한시간 반 가까이 되는 시간을 기다려 십자가 기도회를 마쳤다. 처음 우리의 여정을 시작했던 성당으로 돌아와 내 친구가 되어주어서 참 고마웠다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신 ‘나는 나’(I am who I am)라는 표현은 사실 인간과 함께하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드러내신 것이다. 여호수아를 비롯한 수많은 성경의 인물들과 하나님이 맺으셨던 ‘네가 어디로 가든 함께’하겠다는 약속은 빈 말이나 허울 좋은 인사치레가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겠다는 다짐이며, 동시에 좋은 동행자가 되어주겠다는 의지적인 결단이다. 설사 상대의 선택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함께함을 포기하지 않는 것. 기꺼운 마음으로 끝까지 함께 걸어가는 일. 우리를 종이 아니라 친구로 부르신 그 분의 결단은 우리가 겪는 외로움을 결코 방관하지 않으신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많은 순간에 인간으로서의 우리는 혼자라는 고독과 외로움을 겪게 될 것이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마음들 앞에서 얼마쯤은 절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결같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라는 것. God never lets you be alone. (하나님은 결코 그대를 홀로 두시지 않는다.)

<새가정> 2020년 2월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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