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검다 하지만 나에겐 아름답단다
너는 멀리 왔다 하지만 널 따라 나도 왔단다
너는 나의 전부란다 널 위해 날 주었단다
그런 너는 나의 눈에 검으나 아름답다

<검으나 아름답다> 김도현(Feat. Coffee Boy)

초음파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다녀온 친구가 경과를 보냈습니다. 기적처럼 종양의 크기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하네요. 쉽지 않은 치료의 시간 속에서도, 매주 한 시간의 기도 시간을 서로 잊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눈물을 짓기도 하고, 머리카락이 다 빠진 친구가 어색한 비니를 쓰고 긁적이기도 했던 모니터 앞에서의 시간들을 기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친구에게 사진을 보내기 위해 더 열심히 밖으로 나댕겼던 나날에 보람을 느낍니다. 한 고비는 넘은 셈이지만, 수술과 재활까지 여전히 더딘 회복의 시간이 필요한데요. 그래도 순간 순간의 감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자랑스러워하고 응원해주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매애의 힘은, 설명할 수 없는 뿌리깊은 연대로 얽혀있음을 기억합니다. 후에, 떠올렸던 수많은 언니들의 얼굴이 문득 보고 싶어졌습니다. 알고 있어요. 그녀들은 그 때 그게 최선의 말이라 여겼겠지만, 제게는 꽤나 큰 상처가 되는 말들이었습니다. 너같은 여자, 너라도, 라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저를 제한해 버렸던 그 무수한 말들 말입니다. 여전히 손을 내밀지 않고 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도, 당신들에게 들려줄만한 소식들을 굳이 전하지 않는 일도 이해하리라 여깁니다. 곡해되고 왜곡되는 언어 속에 갇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신의 더 많은 비밀을 얘기하지는 말아주세요. 당신이 살아온 삶의 무게를 손쉽게 타인에게 전가하려는 이기심은 아닌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존중을 이야기하면서도, 이미 정해진 하나의 이상향을 정해놓고 재단하듯 저의 삶을 간단한 심리학 용어나 몇마디 자기계발서의 언어로 치환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그렇게 편리한 방식으로 살아오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살아갈 생각도 없습니다. 알파걸이나 여풍같은 그럴싸한 단어들로 포장하는 분위기에 휩싸여, 그리고 그 뒤에 숨어서 비겁하게 혀를 차거나 손가락질하지도 말라는 얘기입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숨죽여 살지는 않을 테니까요. 배려하는 것처럼 늘 주방에 있었지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흉내만 냈다는 건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차라리 일부일처제의 부당함을 되바라지게 따지던 스무살의 연애가 훨씬 평등했던 것을 이제야 돌아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성경 속에서 단 한 사람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엉긴 젖과 말뚝으로 적장의 생명을 송두리째 앗아간 야엘, 예수의 옷자락을 향해 손을 뻗던 혈루병 여인, 향유 옥합을 열어 눈물과 함께 예수의 발을 씻겼던 여인, 성전 헌금함에 전 재산인 렙돈 두 개를 떨어뜨리던 여인, 심지어 베드로에게 네가 그 도당이냐며 물었던 여인까지 말입니다. 사순절이자 여성의 날, 간절했던 그녀들의 마음들을 헤아립니다.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그녀들을 앞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다부지게 말했던 그이가 이천년이 넘는 역사 속에 살아 있는 것처럼 우리도 살아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이제 콧대를 좀 세워볼까요. 20240308 재이.

CHARLEY TOOROP 
@ Rijks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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