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록] §5 처음으로, 부활

부활절 새벽 어스름, 단단히 챙겨입고 길을 나섰다. 모든 것이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새벽이라는 말은 거짓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작은 수선화가 슬며시 꽃잎을 여는 공기, 바람이 여린 나뭇잎을 스치는 순간이 어떻게 정적일 수 있겠는가. 어둠을 가르며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부활 교회(Auferstehungskirche)의 캄캄한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은퇴한 가비 목사님이 반갑게 찬송가와 작은 초를 건네주셨다. 중앙에는 세례반과 하얀 천이 놓여있고, 이미 와 계시던 두 명의 성도님이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가만 앉아서 자전거 헬멧을 내려놓고 손을 마주 쥐고 눈을 감았다. 어스름. 어둠이라고 부르기에는 진하지 않고, 아침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지 모자란 이 시간만이 주는 특별한 감성을 그대는 아는지. 전날 부활절 성야(Osternacht) 예배에서, 장작이 타오르던 교회 마당을 불빛으로 가득 채우며 부르던 떼제 찬양이 입술 끝에 머물렀다. “Meine Hoffnung, meine Freude, meine Stärke, mein Licht. Christus meine Zuversicht (내 소망, 기쁨, 힘과 빛. 그리스도 나의 반석)” 어제로부터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예배의 자리에서 만난, 수잔네가 다가와서 반가운 인사를 했다. 부활절 초(Osternkerz)의 불빛을 나눠 각자의 초에 붙이는 일은 몇 번이나 반복해 온 익숙한 의식이었지만, 부활을 맞이하는 아침에 다시금 세례를 기억하며 물로 이마에 성호를 그어주는 의식은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낭독된 말씀이 ‘돌아온 탕자’라니! 10명 남짓의 참석자가 빙그레 둘러 서서 성찬을 나누고, 서로에게 평화의 인사를 전하는 사이, 어스름은 어느덧 아스라히 물러가고 온전한 아침 햇살이 예배당 안을 가득 채웠다. 예배를 마치고 아무도 떠나지 않고, 아늑하게 마련된 자리에 앉아 진짜 식탁 교제를 나누었다. 양 모양의 케이크를 조금씩 베어 먹기도 하고 – 처음 자르시는 분이 머리부터 잘라서 놀랐.. 😭 – 허브가 들어간 버터와 지난 주에 한 성도분이 만들었다는 마멀레이드를 딱딱한 빵에 바르기도 하면서. 교회 통합 과정으로 곧 정리될 이 아늑한 공간을 아쉬워하고, 지난 주에 발표된 AfD의 충격적인 정당 지지율(20%)을 걱정하며 부활의 하루를 시작했다.

2026 Frohe Ostern aus Speyer 🌼🌷
🐑
20260405 @ Auferstehungskirche Speyer

독일 교회의 부활절은 고난주간(Karwoche)인 목요일부터 예배가 시작된다. 한국어로는 성목요일(Gründonnerstag), 성금요일(Karfreitag), 성토요일(Karsamstag, Osternacht)이라고 번역되지만 매일 다른 의미를 가진 예배를 드렸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예배는 성목요일 예배였는데, 슈파이어의 유서 깊은 삼위일체 교회(Dreifaltigkeitskirche)의 강단 앞에 실제 식탁들을 하나로 연결해서 성도들이 마주 보고 앉도록 구성되었다. 주제가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was ich Zum Leben brauche)”이었기 때문에, 예배를 시작하며 한 단어씩 적을 수 있도록 안내받았고 목사님이 메시지를 전하기 전에 각자 본인들이 적은 내용을 자유롭게 나누며 빵과 잔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들을 돌아보게 했다. 여러 단어들 중에서도, 단연코 큰 반응을 받았던 것은 “건강(Gesundheit).” 앉은 자리에서 성찬을 나눈 뒤, 예배를 마치고 한참동안 간단한 간식 거리(치즈, 사과)와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삼위일체 교회의 당회원인 어르신 한 분과 등을 맞대고 앉아 있었는데, 어쩌다가 내게 천장에 그려진 벽화 하나하나를 설명해 주시는 바람에 한동안 계속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느라 뒷목을 잡았다는 후설. 설교단 위의 황금으로 만들어진 새를 보며 늘 어떤 새인지 궁금했는데, 펠리칸이라는 것도 처음으로 배웠다. 실은 어르신이 벽화 순서를 다 외우고 계셔서 본인은 보지도 않고 설명해 주셨다는 게 성화보다 더 놀라웠다! 🤓😮

🥨🍷
20260402 @ Dreifaltigkeitskirche Speyer
20260403 @ Diakonissen Mutterhaus

다음날 이어진 성금요일. 두 번의 예배를 드렸는데, 오전 예배는 우리 교회 성가대 – 나는야 소프라노 – 가 다른 교회 원정(!)을 가는 덕분에 삼위일체 교회 예배에 연속으로 참석했다. 함께 비카리앗 코스를 밟고 있는 크리스티네가 준비한 가상칠언으로 예배가 구성되었는데, 예수님의 말씀과 우리의 현재를 정치적인 시선으로 짜임새있게 엮으면서 성가대의 찬양과도 잘 어우러졌다. 하나의 말씀이 마칠 때마다 커다란 벽돌 하나씩이 강대상 위로 올라가던 모습도 상징적인 무거움을 더했다. 여전한 성폭력과 독일 사회에도 만연한 인종차별, 그리고 멈출 줄 모르는 전쟁. 모처럼 성가대 단원으로 서는 경험도 정말 특별했는데, 나보다 회중석에 앉아 계시던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더 즐거워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돌아가신 시각, 오후 3시에 있었던 디아코니아 자매회의 예배. 처음 보면서 흰머리 소년소녀 합창단이라고 명명했던 성성한 어르신들이, 사복음서의 말씀 사이 사이에 앉고 서는 일을 반복하며 찬양하시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주보와 함께 받았던 엽서 한 장을 들고 내내 눈물을 글썽일 수 밖에 없었다. 피에타의 한 장면처럼 오늘 우리 세상에서 참혹하게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자리가 바로 오버랩되었다. 폭격으로 잃은 딸들의 사진을 안고 오열하던 이란의 어머니들. 감히 손도 대지 못할 마음. 간신히 두 손으로 포갠, 눈을 뜨고 바라볼 수도 없는 상처와 아픔을 그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겠는가. 늘 오고 가는 건물 안의 예수상 앞에서 부디 이 슬픔이 이제는 멈추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교회가 예배를 드리는 공간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독일에서 새삼스럽게 배우게 된다. 때로는 교회에서 팝 콘서트가 열리기도 하고, 전위적인 미술의 전시회장이 되기도 하며, 난민들을 위한 카페가 되기도 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저렴한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사회 복지의 장이 되기도 한다. 고난 주간에 전시회장이 된 우리 교회. 오늘 부활절 예배 주보의 첫 면에는 그 작품 중의 하나가 실렸다. 슈파이어에 있는 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소망과 부활을 주제로 만든 그림과 작품들. 그 작품을 주제로 총회장님이 설교를 전했다. 여성이 기도하듯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작은 조각상 아래로, 깨어진 유리 조각에는 거짓말(Lügen)과 텅 빈(leer), 자기혐오(Selbsthass) 같은 말들이 쓰여 있고, 그녀의 등 뒤로 펼쳐진 날개 모양의 유리 조각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Du sollst deinen Nächsten lieben wie dich selbst!)”와 “하나님은 너를 사랑해(Gott liebt Dich)”가 쓰여져 있었다. 우리의 부활은, 오늘의 부활은 어떤 모양이어야 할까.

🙏🏼
20260405 @ GDK Speyer
굴*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여는, 첫 부활에 대하여 🦪
20260405 @ Speyer

육식이 자제되는 고난 주간에는 평소에는 독일에서 맛보기 힘든 해산물들이 특식으로 팔린다. 삼면이 바다에서 살아온 한국인으로, 게다가 부산에서 태어난 사람이니 유럽 대륙에서도 진득한 내륙인 슈파이어에서 해산물이 얼마나 그립겠는가. 거의 몇 년만에 마트에서 굴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덜컥 집어 들고 왔는데, 열어보니 아이쿠야. 난감하게도 꽉 닫혀서 딱딱하기 그지 없는 생굴이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그러나 사이사이를 빈틈없이 막으려고 애쓴 난공불락의 껍질을 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이리저리 뒤집어 보았다. 숨구멍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단단히 닫혀 있다. 다행히 친절하게도(!) 굴을 깔 수 있는 날카로운 칼까지 들어 있어서, 온갖 신공을 동원해 아주 작은 틈 사이를 비집고 녀석을 기어코 열어냈다. 이 작은 생물 하나도 깨어지지 않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쉽게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로운 저항인가. 열어내는 자, 깨뜨리는 자. 그리하여 결국 그 맛을 보는 자는 비로소 감추어진 보물을 아는 자가 된다. 깨진 유리 조각으로 만든 아름다운 작품을 보고 돌아와 굴을 열어 마침내 그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보며, 부활의 신비를 다시 처음으로 기억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생선을 구워놓고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셨던 예수님은 우리가 깨어진, 지겹도록 익숙한 그 자리에서 다시 처음처럼 물으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좋아하느냐**. 20260405 목재록.

* 황동규 시 <쨍한 사랑 노래>에서 차용, 원래는 ‘게’ 🦀
** 새한글 성경, 요한복음 21장 17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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