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기오날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프랑크푸르트 공항역 버스 정류장을 향해 달렸습니다. 휴가철이라 여러개의 캐리어를 들고 이동하는 여행객들이 많아 간신히 사이를 비집고 내려야 했습니다. 최단거리 지름길.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두칸씩 뛰어올라 X61번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원래 정각 39분에 출발하는데, 표를 사는 여행객 덕분에 좀 더 기다리고 있었네요. 감사제목 적립. 한 시간 일찍 교회에 도착하니 열쇠를 가진 목사님이 아직 도착 전이시네요. 미리 와 계신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한달간 독일을 방문했던 여자 친구가 지난주에 귀국한 종욱 형제에게 마음이 어떤지 물었더니 자동반사처럼 적적하다는 말이 튀어나옵니다. 요리하다 손을 베어 네 바늘이나 꿰맨 박승자 권사님은 이번주에 실밥을 푸신다고 합니다. 여름이라 더 고생 많으시다는 심심한 위로를 건넸습니다. 때마침 목사님이 오셔서, 바로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데 권사님이 갑자기 휘리릭 보자기를 펼치시네요. 베이킹을 잘하는 독일 친구가 나눠준 통밀빵 한 덩어리. 한 조각만 당신을 위해 남겨두고는 제게 다 건네십니다. 건강한 빵이니 아침식사로 꼭 먹으라며, 한사코 마다하는 제 가방에 넣습니다. 이번에는 빵이라도 잘 챙겨먹겠다 다짐합니다.
찬양팀과 미디어팀이 바쁘게 악기와 모니터 세팅을 합니다. 리더십 모임이 따로 없는 날이라 평소의 주일이라면, 예배 30분 전에 초 세 개에 불을 붙이면 제 할 일은 모두 끝이 납니다. 제 키보다 몇 뼘은 더 위에 있는 2024년 초. 심지가 보이지 않아서, 연초에 불을 붙일 때마다 꽤나 애를 먹었습니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갔으니 심지는 보이는데, 녀석이 촛농들 사이에 숨어 버려서 그걸 다시 녹이는데 더 많은 시간을 씁니다. 빈혈기가 있어 여름마다 고생인 새롬 자매에게 작은 하리보를 건네고, 이런 저런 일상의 업데이트를 묻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레 찬양팀 리더인 민영 안수 집사님이 저를 찾습니다. 질문이라고 시작했는데, 사실은 부탁이었습니다. 찬양팀 메인 반주자가 한국에 가 있는 사이 보조 반주자가 세워졌어요. 그런데 오늘은 그 분마저도 휴가라 못 온다고 하네요. 의사소통상 약간의 혼선이 있어서 놓쳤다며 제게 갑자기 반주를 부탁합니다. 흔쾌히 그러겠노라 했습니다. 예배 순서에 반주가 필요한 부분을 목사님과 함께 다시 체크하고 나오는데, 재차 제게 고맙다는 얘기를 하시네요. “저는 항상 플랜비에요, 집사님“ 이랬더니 플랜비가 너무 좋은 거 아니냐며 함께 웃었습니다.
예배 시작 전에 정말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기도를 했습니다. 예상치도 못한 부르심은 대부분 큰 은혜의 복선임을 압니다. 사실 반주자로 살았던 저는, 옛날 찬송가 번호를 다 외울 정도였습니다. 찬미예수 500이라는 찬양집도 다 닳을 정도로 봤습니다. 묵도, 기도, 봉헌, 축도 후 후주에 필요한 반주용 찬송은 약간의 과장을 보태, 눈을 감고도 칠 정도였습니다. 모든 것이 갖춰진 교회에서는 목사로서의 자리만 지키면 그 뿐이겠지만, 이민 교회라는 헐겁기 그지 없는 변두리에서는 목사의 자리가 결코 고정석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불안정이 가져오는 의외의 생동감. 강물이 바다로 주저없이 흘러가듯 온 마음을 열고 담겨지는 그릇대로 따라갑니다.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채워지는 은혜는 사람의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예배의 부름이 시작되고 입례송을 쳤습니다. 독일 교회가 원체 천장도 높고 넓어서 조금 더 세게 치다보니, 살짝 손이 저립니다. 그랜드 피아노라 타건감도 약간 색다릅니다. 평소에 틈틈히 손가락 운동도 해야겠네요. 찬양팀이 찬양을 인도 하는 동안, 목소리를 다해 찬양을 했습니다. “주께 가까이”라니요. “주님만을 원합니다 더 원합니다 나의 맘 채워 주소서“하면서 살짝 눈물이 어렸습니다. 오늘 담임 목사님 설교는 더 길게 하셔도 좋았을 열왕기하의 수넴 여인 이야기. 목사가 다른 목사의 설교에 은혜 받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데, 이것도 제게는 기적처럼 큰 은혜입니다. 무릎 위에서 ‘죽다’와 하나님의 사람의 자리에 ‘두다’의 미묘한 차이. 부활 신앙이었을 그녀의 결단 앞에 감복하는 말씀이었습니디. ‘과거는 현재의 기억, 미래는 현재의 기대’라는 키에르케고르의 명언도, 양귀자의 소설 <모순>의 주인공 안진진이 했다는 말. ‘겨자씨 한 알도 심겨지지 못할만큼 얄팍한 마음’이라는 표현도 참 좋았습니다.
설교를 잘 듣고 있다가 갑자기, 설교 직후에 이어지는 기도회에도 피아노 반주가 있었다는 게 생각이 났습니다. 다행히 어울리는 찬송가를 바로 찾았습니다. 한숨을 돌렸네요. 그런데 반주 끝부분 쯤에 바로 봉헌이 이어지고, 그리고 그제야 그 봉헌에도 반주가 필요하다는 게 뇌리를 스쳤습니다. 아차! 목사님도, 안수 집사님도, 저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숨은 반주곡이 있었던 거죠. 서둘러 찬송가 앞부분을 휘리릭 펼치니, 야속하게도 성탄 찬송가 파트가 보입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난생 처음 보는 번호의 찬송가를 쳤습니다. 개정 찬송가가 이렇게 원망스러운 날이 또 있을까요. 에어컨도 없는 독일 교회라 흐르는 식은 땀에 손바닥이 바로 축축해져 버렸습니다. 축도 전에, 갑작스럽게 목사님이 광고 시간에 따로 얘기를 못했다며 오늘 반주로 섬긴 저를 세우고는 성도님들의 박수로 격려해 주셨습니다. 축도 후의 후주는, 당연히 제가 가장 애정하는 찬송가.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을 알 사람이 없도다“
청년부 모임 8월의 주제는 ‘교회’입니다. 성경 공부를 핑계로 무더운 여름에도 펜을 너무 많이 잡으라고 시킨 것 같아, 오늘은 각자의 모교회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후식은 한별 자매가 구워 온 Macha 견과류 쿠키. 대부분 이름을 알만한 한국의 큰 교회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란 청년들. 유일하게 대학생 때 신앙을 갖게 된 버들 자매가 자신의 모교회로 지금의 우리 교회를 꼽았습니다. 고마워졌어요.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 목사를 쫓아 다니느라 황금같은 토요일에 쉬지도 못하고 마인츠, 비스바덴을 다니느라 피곤했을텐데, 힘든 내색 없이 씩씩하고 즐겁게 따라와 주었습니다. 오늘 모임을 마치며, 어제 청년 소풍으로 함께 다녀온 비스바덴 미술관의 한 그림을 나눴습니다. 정교회의 이콘처럼 예수님의 얼굴이 강조된 이 그림의 제목은, “Saviour’s Face: Expectation(Heilandsgesicht: Erwartung, 1917)”이었습니다. 교회의 머리, 얼굴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얼마나 쉽게 잊고 있는지. 모교회를 이야기하며 그 누구도, 예수라는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는게 얼마나 아이러니 했는지요. 그래서 사람들의 얄팍한 부피의 마음 밭에,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씩 필요했던 게 아닐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 오래 오래 이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때마침, 귓가의 이어폰에서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네요. 문득 이 찬송가를 제일 좋아하던, 제 피아노 반주에 덩실덩실 춤추곤 하셨던 강시분 권사님이 떠오릅니다. 정말 이제는 많은 분들이 하늘나라에 계시네요. 보고 싶어요. 갑자기 차오르는 눈물을 간신히 참고, 다음 버스에 오르는데 하늘에서 뚝 하고 빗방울 하나가 떨어집니다. 함께 기억하는만큼, 서로 기대하며, 오늘을 살게요. 구원자의 얼굴을 그리듯. 20240804 재이.
@ Museum Wiesba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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