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만 한다

몇 주 전부터 학교 사무실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찰떡같이 알고 고쳐주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결국 오늘에서야 수소문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달에 “Native American Christology(미국 선주민 기독론)”으로 기말과제를 써낸 학생 점수와 코멘트 확인차 교수님께 메일 한 통. 강사료를 위해 수업 시수를 적어 보내며 팻톡 여사에게 메일 한 통. 마지막으로, 가톨릭 신학부의 강사인 친구에게 메시지 하나. ‘사무실 문을 열려면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담아서요. 엄마와 마지막 짐싸기 내용물을 확인하느라 통화하고 있는데, 가톨릭 신학부 친구가 바로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본인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면서 저 말고도 많은 학교 사무실들 문이 말썽이라고 말이지요. 왠만해서는 부서지지 않는 튼튼한 문이니, 있는 힘을 다해 열어보라는 응원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독일 문들은 어마어마하게 무겁고, 항상 실물 열쇠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신학부가 위치한 곳은 신축 건물이라 열쇠 대신 카드처럼 개별 Transponder를 주셨는데, 그걸 열쇠 구멍쪽에 가져다 대면 초록불로 바뀌고 손잡이를 돌리면 문이 열리는 시스템입니다. 초록불로 바뀌기는 하는데,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어요. 친구와 전화를 끊고 나자 교수님도 답장을 보내오셨네요. 학교에서 전체 메일을 보내 더위에 문들이 약간씩 휘거나 뒤틀린 것 같다면서 힘주어 열어보라는 결론이었어요. 어휴, 이럴 때 한국 사람들끼리 하는 말이 있어요. “독일이 독일하네!🇩🇪 ” 친구 려홍과 온라인 기도회를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고, 학교에 나왔더니 웬걸요. 아주 쉽게 문이 열립니다. 오늘 여기저기 연락하기를 잘 했습니다. 사실 곧 도서관에 반납해야 하는 책, 거기에 노트북, 충전기가 사무실에 있었거든요. 주말에는 교회 일정이 많고 다음주는 한국행이니, 사실 오늘이 아니면 큰 낭패였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와중에 제일 재미있던 건, 문이 열리지 않을 거라는 최악의 상황을 이미 가정하고 준비하던 제 마음가짐. 그러다 문이 열리면 정말 고맙고 행복해 하는, 단순함.

조카가 올해는 3단 필통을 사달라고 합니다. 작년에는 연필 지우개 문구 세트였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요구하는게 많아지네요. 긴 비행시간동안 완성했던 핸드 워머도 원래는 여동생을 위한 거였는데, 본인 달라고 조르더니 여기저기 이모가 만들어준거라고 자랑하고 다니다가 작년 겨울에 잃어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아예 미리 동생용을 만들었고, 조카용 핸드 워머를 14시간의 비행동안 완성할 계획입니다. 평생 일회용 면도기만 쓰셨던 아버지를 위한 브라운 전기 면도기. 올해 봄에 결혼한 친구를 위한 목각 조각품. 불면에 시달리는 친구를 위한 수도원 허브차. 로잔대회 기간에 홈스테이를 제공해 주실 가족을 위한 하리보. 오가다 만날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위한 작은 비타민들. 한 해동안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옷장 한 켠에 쟁여 두었던 물건들을 꺼내며, 그리움들이 묻혀있는 자리를 더듬어 봅니다. 아, 영국에 갔을 때 가족들이랑 하나씩 나눠 쓰려고 샀던 부드러운 목도리도 깜빡 잊고 있었네요. 베니스에서 산 장미향 진한 로션들도 챙겨야 합니다. 선배가 챙겨준 스위스 초컬릿, 어제 베트남 친구가 주고 간 모차르트 초컬릿. 이러다 또 짐이 넘치고 넘치겠다 싶어서 눈 딱 감고 하나씩 덜어내기로 합니다. 욕심은 금물. 과하면 뭐든 부족한 것보다 못합니다.

결국 추가 장학금을 얻지 못해 다음달에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베트남 친구에게 김치 만드는 법을 알려주느라 어제는 오전 내내 고춧가루와 배추 씨름을 했습니다. 김치 겉절이와 금방 뚝딱 만들어낸 된장찌개를 국물 하나 안 남기고 맛있게 먹어주는 친구가 참 예뻤습니다. 혼자라면 다시 가지 않았을 곳곳을, 당분간 독일에 없을 친구에게 보여주려고 일부러 많은 시간을 들여 함께 했습니다. 이 곳에서 사는 시간이 제법 흐르면서, 제가 사는 도시 주변을 더 많이 알게 되고 그만큼 더 애정하게 됩니다. 여행 가이드북에는 나오지 않는 숨겨진 보석같은 장소들. 뤼데스하임의 힐데가르트 수도원. 라인강을 오가는 빙엔의 페리. 베토벤이 유아세례를 받은 본의 작은 성당. 도로테 죌레가 정치적 밤의 기도회를 열었던 쾰른의 교회. 여전히 처음 해보는 것들이 많다는 것도 신기합니다. 뤼데스하임의 케이블카도 처음 타고, 쾰른 돔 외부를 한바퀴 도는 것, 베토벤 하우스에서 옛날 본의 지도를 보는 것, 공사를 마치고 새로 개장한 본 카톨릭 성당의 순교자 머리 동상도 처음이었어요. 상투적인 사람, 익숙한 마음이 되지 않기 위한 전략일까요. 같은 장소라고 해도,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같은 마음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불안이 아니라 기쁨으로 받습니다. 여전히 어렵지만, 예전보다는 조금 더 독일어가 들리고 보이는 것도 고맙지요.

한 달의 공백을 위해, 분갈이를 마친 식물들도 기숙사 안에서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해 미리 맡겼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진행할 청년부 모임들도 리더들에게 꼼꼼하게 부탁합니다. 교수님께 출국 전에 추가된 논문 챕터를 보내드리고 나면, 길고도 짧은 가을 휴가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KD 장학금 담당자에게 한국 여정을 알리면서 지원금 논의를 마쳤고, 독서 모임을 위해 비행기 안에서 읽어야할 스탠리 하우어의 책도 다운 받았고, 저를 공항까지 데려다 줄 택시도 예약했습니다. 10월 초에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로 한 유럽지역 아시아 신학 박사 과정생 모임 포스터도 마지막 버전을 오늘 중으로 보내고, 9월 마지막주 안녕교회 설교 초안도 작성해야겠네요. 내일은 교회에서 있는 요한계시록 특강 전에 찬양 인도를 10분 정도 하고, 특강 후에는 남편과 미국 여행 중인 청년 집에 들러 부탁하고 간 식물들에게 물만 주고 오면 됩니다.

Was mich angeht, ja du lieber Himmel mein Reich ist in der Luft, wie der wind oft, so wirbeln die töne, so oft wirbelte auch in der Seele. (내가 염려하는 것은, 하늘이여, 나의 제국은 공중에 있어서, 마치 바람이 자주 소리를 뒤흔들듯, 영혼도 자주 소용돌이친다)

이번에 거의 5년만에 들른 베토벤 하우스에서, 귀가 들리지 않아도 의지적으로 본인에게 주어진 음악가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였던 그의 흔적들을 새롭게 보았습니다. 필담으로 일상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던 이름 모를 사람들의 대화록을 보면서, 여전히 존재와 당위 사이에서 ‘당위’를 앞세우는 운명론자의 이끌림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베토벤도 당대에는 어리숙하다(Naive)는 비난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자주 갈등했고, 아팠고, 어딘가는 부서졌고, 무엇인가는 잃어버렸고, 어디선가 섧은 삶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그러니 나와 당신도 그래야만 하는 일들 속에서, 그래야만 할 수 있는 보석같은 반짝거림이 빛바래지 않기를. 20240830 재이.

* 인용문 : 루드비히 폰 베토벤의 1814년 편지 중에서 (Ludwig von Beethoven in einem Brief aus dem Jahr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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