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시작되었다. 여행을 마저하라. Der Weg ist begonnen, vollende die Reise:

근심 걱정은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 Denn Sorgen und Kummer verändern es nicht,

너를 영원히 내동댕이쳐 균형을 잃게 할 뿐 Sie schleudern dich ewig aus gleichem Gewicht.

괴테 <서.동시집> 중 “지혜의 서”, 전영애 옮김

한 달 만에 돌아온 책상, 데스크탑에 붙여 놓은 작은 포스트잇에 이렇게 적어 놓고 갔었네요. 그 옆의 마스킹 테이프에는 이렇게 쓰여 있구요. “시간이 머무는 곳에서는 간혹, 단어들이 몇 가닥 피어나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 가닥을 모아 문장을 한 자락 꿰어냈다.” 귀국 전 마지막으로 만난 친구가 건넨 선물 바닥에 수줍게 붙어 있던 꽃무늬 포스트잇을 그 옆에 붙여 봅니다. “어디에서든 늘 반짝반짝 빛나고 행복하길” 서로 다른 문맥에서 놓인 글자들이 지난 몇 달간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 같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숨가쁘고, 벅차게, 그러나 분명히 내딛을 수 있던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차로 인한 이른 새벽의 고요함이 믿기지 않을만큼 낯설게 느껴지지만, 창 밖에서 초가을 추위에 예리한 입김을 내뱉는 새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실감이 납니다. 해가 떴는데도 흐린 하늘, 다시 독일입니다. 새소리가 이내 그쳐 의아했는데, 조금씩 가랑비가 내리고 있네요.

탁상 달력을 한 장 넘깁니다. 무더웠던 올 여름을 듬직하게 책임졌던 선풍기도 분해하고, 먼지를 조심스럽게 닦아냅니다. 옷장 안의 히터와 자리 바꿈을 해야하니, 물로 깨끗하게 씻어서 라디에이터 옆에 두고 말리기로 합니다. 여름 샌들도 넣어둬야겠네요. 잠시 세제를 푼 물에 담궜다가, 다 쓴 칫솔로 틈 사이의 까만 흔적들을 지워냅니다. 냉장고 청소 후에 커피박까지 야무지게 넣어 두고 갔는데, 월남쌈을 먹고 남겨 둔 파인애플에 곰팡이가 생겼네요. 다음에는 누구에게든 꼭 다 나눠주고 가야지, 다짐합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엄마표 묵은지를 냉장고 깊숙하게 넣어두니 부자도 이런 부자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해마다 한국에 갈 때 가져가는 것들과 한국에서 가져오는 것들의 목록이 달라집니다. 코로나 이후, 2년 반 만에 한국에 갔을 때는 뭐든 담아오느라 마음이 급했습니다. 독일에서 구하기 힘들거나 아주 비싼 것들, 가방에 욕심껏 두 세개씩 담았다가 결국 놓고 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지요. 올해는 가기 전부터 작정을 했습니다. 아무리 필요한 것이라도 하나씩만 담아오기. 그런데도 짐을 풀고 보니, 이 하나의 법칙이 깨진 자리가 여럿 보입니다. 묵은지, 한국쌀, 들기름, 건나물, 쌍화차. 그래도 덕분에 든든하게, 이미 겨울 왕국이 도착해 버린 이 곳의 냉랭함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살짝 눈감아 주기로 했습니다.

꿈이었을까요. 하나님은 참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제 삶을 위로하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갈되지 않는 목마름이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것들도 스르르 지나가게 하는 놀라움이 있었습니다. 시차 적응을 마치자마자 이런저런 약속들이 있었는데, 두 번째 코 선생님 방문으로 며칠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아프기도 했지만 사실은 속이 상했지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남은 시간 일주일을 꼬박 외로운 섬처럼 떠다녔던 로잔 대회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 날카롭게 벼려진 시선이 단숨에 무뎌질 수는 없는 노릇. 적나라한 한국 교회와 신학의 현실을 목도하는 일이, 생각보다 엄청난 통증으로 다가왔습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불면의 밤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서울 선언문은 차치하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다양한 주제의 토론 테이블. 남성 목회자들 사이에서 제 목소리를 크게 내야 간신히 들리는 것이 목 안의 가시처럼 불편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상대가 듣기에 쉽고 편한 얘기를 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끊임없이 예민한 주제와 단어들을 들고 와야했습니다. 은혜롭고, 좋고, 행복하고, 기쁘고, 소망이 넘치는 거짓 복음을 선포할 수 없었던 선지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모르고 싶은 마음, 보지 않았으면 하는 눈,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귀. 이제야 구약이 다른 시선으로 읽힙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계속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었을까. 너무 힘들어서, 집회 때마다 거의 광신도처럼 기도하던 제게 주어진 기적같은 위로들이 있었습니다.

송도의 숨겨진 비경에 데려가 인생 사진을 남겨준 클레시스 친구들.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는 제가 너무 왼쪽으로 간 것 같다며 따로 불러내 이유를 묻던 은희 언니에게 함께 기도하자고 했던 파라솔. 추석에 폭염주의보가 내렸던 전라남도 강진에서 조카 손을 잡고 한걸음씩 내려오던 다산초당 산길. 목포 해양대학교에서 온 가족이 함께 실습선에 올라 구경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름도 모르는 아버지의 까마득한 후배. 안녕한 식탁에 앉아 함께 식사와 삶과 이야기를 나누던 나의 오래되고 소중한 인연들. 친구의 왼팔을 잡고 무릎을 꿇은 채로, 눈물과 콧물과 땀이 범벅되었던 아둘람의 집 기도회. 의정부시 시장님과 아버지가 회중석에 앉아 내 설교를 듣던 맑은교회 예배. 하나님의 마음으로, 1년 짜리 적금을 들었던 두툼한 돈을 건네시던 권사님. 인종차별과 전쟁 성폭력에 대한 이민자의 관점을 거칠게 성토하던 내 말을 가만히 귀담아 듣고 있다가, 저녁 식사에서 한국인 여성들에게 미안하다며 눈시울을 붉히던 일본인 선교사 고유키 상. 늦은 밤마다 나와 함께 냉면을 먹으러 다녀 준 우리 엄마. 광화문의 아름다운 가을 햇살. 의정부 미술 도서관에서 새롭게 알게 된 작가, 백영수. 교회 게시판에 ‘마음의 목발’을 출력해서 붙여 놓으셨던 아빠. 여성 사역자로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며, 존재 자체로 고맙다며 자신의 아내 이야기를 해주던 디아스포라 테이블의 미국인 일본 파송 선교사 칼슨. 따뜻한 물이 흐르는 자쿠지에 앉아 엄마와 아내로 사는 일의 고단함을, 싱글 여성 사역자로 사는 삶의 지난함을 도란도란 동생과 나누며 올려다 보던 담양의 보름달. 다 나누고 빈 손이 되어버린 내게 혼밥 후에 홍차를 선물로 건네고 가던 낯선 에디오피아 로잔 대회 참가자. 꽤 괜찮은 닻을 올린, 아시아 신학자 네트워크 첫 온라인 모임의 절반의 여성 참가자.

참된 위로는 위로 볼 때, 위에서 볼 때만 가능하다는 것. 다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20241008 재이.

저도 잘 두드리고 올게요 🛠️
@ Hammering man, Gwanghwa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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