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에도 전구가 들어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불이 꺼지기 전에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지난 주말 아침, 익숙하게 두유 한 컵을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얘기입니다. 한번도 캄캄한 냉장고 안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기숙사 붙박이 가구처럼 늘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작은 냉장고. 냉동실도 좁아서 하나를 꺼내면 다른 하나를 다시 정리해서 넣어야하는, 때마다 고생해야 하는 그런 냉장고라고 혼자 몰래 투덜거린 걸 녀석이 듣기라도 했던 걸까요. 설마.. 전원을 잠시 끄고 켜면 불이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왠걸요. 아예 전원도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보였어요. 보통은 전원이 들어오면 약간은 시끄럽게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그냥 말그대로 적막강산. 주말에는 하우스 마이스터(일명, 하마 🐽)가 일하지 않기 때문에, 이대로 냉장고 안의 음식들이 고스란히 휴지통으로 들어가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떠올려야 했지요. 하필, 오후와 저녁 일정이 연달아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아주 급하게 상할 것 같은 것들만 후다닥 정리하고 외출을 감행했습니다. 혹시 모르니 전원은 다시 켜 두었구요. 안이 제대로 안 보이니 이게 전원이 켜진 건지, 꺼진 건지도 모르겠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늦은 밤에 돌아와 기숙사 문을 열었는데, 소란스럽게 울리는 냉장고 모터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요. 냉장고 안은 여전히 캄캄했지만,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후문. 자다가 냉장고 모터 소리에 놀라도 일부러 들으라고 고마워, 라고 냉장고에게 인사합니다.
주말에 하마 아저씨한테 메시지도 보내고, 사무실 앞에 건의함에 불 안들어온다는 얘기에 제 서명까지 해서 쪽지도 넣어뒀는데 며칠째 감감 무소식입니다. 독일에서 이제 하다 하다 냉장고 불까지 자가로 교체해야 하나 싶었는데, 어제 귀갓길에 하마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낙엽을 치우고 있었는지 수북히 쌓인 낙엽 더미 옆에서, 커다란 헤드폰을 낀 채로 통화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거죠. 후다닥 달려가서 아저씨 앞에 딱 섰더니, 저를 보며 화사하게 웃습니다. “냉장고 불 때문이지? 내일 아침 사무실 오픈 시간에 맞춰서 오면 내가 체크하러 갈게.” 아이고, 사무실 오픈 시간은 오전 8-9시 사이 딱 한 시간이거든요. 그 시간 지나면 하마는 사무실에 없고, 아무리 급한 어떤 요청에도 끄떡도 안하는 시스템이에요. 새벽 기도 마치고 눈을 비벼가며 사무실 문을 두드렸더니 하마가 부은 얼굴로 환하게 웃습니다. “132호지? 갈게.” 바로 아침 수업 시간에 맞춰서 나가야 하는데, 간신히 버스 출발시간 5분 전에 와서 냉장고 들여다보는 하마. 김치가 워낙 많아서 커피박을 넣어두었는데 전구 꺼내면서 냉장고 안을 보더니 이게 뭔지 묻습니다. ‘냄새 제거용 커피박’이라고 했더니, 어깨를 으쓱하네요. 전구 종류를 확인하고 내일 다시 오겠대요. “내일 봐” 하고는 휘리릭 코트를 휘날리며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갑니다. 손에는 지난 가을 열심히 입고 다녔던 남색 블레이저를 들구요. 겨울에 입기 어려운 옷들은 시간이 늦어지기 전에 정리해서 넣어 두어야 합니다. 지난 봄에 드라이클리닝을 맡겼다가 돌려받은 코트를 날이 추워져 입으려고 꺼냈더니, 등 부분이 홍해처럼 갈라져 있는 거죠. 세탁소에서 잘못 처리해서 그랬던 것 같은데 확인을 않고 그대로 보관한 제 탓이 컸습니다. 바로 동네 수선집에 가서 맡기고 왔어요. 한국에서 어머니가 입으시던 옷을 가져온 터라, 수선사 아주머니가 처음보는 신기한 박음질이라면서 약간은 난감한 표정으로 받으셨지만, 아주 독일스럽게 티나는 수선으로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옷을 손쉽게 사는 것보다 제 몸에 맞는 옷들을 고쳐 입는 편이 훨씬 편합니다. 검소하기로 유명한 독일 사람들은 쉽게 자신이 쓰지 않는 물건들을 바로 나누거나 고쳐서 쓰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제가 영미권으로 유학가는 대신 독일을 택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사실 저는 교환학생 시절 경험한 미국식 소비문화가 너무 힘들었어요. 모든 것이 넘치지만, 항상 부족함에 시달리는 문화. 뭐든 새 것으로 채우지 않으면 뒤쳐지는 분위기. 따라갈 마음도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시달리는 기분이 참 어려웠어요.
다시 누군가의 이름을 묻고, 이야기를 묻고, 지난 시간들을 궁금해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여러가지 경험들로 무너져 버렸던 시간이 있었어요. 남녀를 불문하고, 나이를 불문하고,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그랬습니다. 안으로만 파고드는 지독한 고독의 시간이었던 셈이었지요. 씩씩하고 담담하게 훌쩍 건너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제 뒤로 매듭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벌써 반 년 가까이 다녔던 줌바에서 저를 빼고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그녀에게 반가운 눈인사는 건넸지만 먼저 말을 걸지는 않았어요. 3년째 함께 공부 중인 박사과정 친구에게도 하늘에 간 남편 이야기는 묻지 않았습니다. 진작에 시작했어야 했던 논문 관련된 인터뷰조차 미뤄두고 있었다는 걸 달력이 두 장 남은 이제야 교수님의 불호령을 들으며 생각합니다. 시간은 절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매듭짓지 못한 것들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온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할 말이 없다는 것도 맞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래 쓰던 물건들이 갑자기 고장이 나거나 불현듯 말없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제서야 알아주는 저를 탓하는 것처럼요. 무지막지한 말들의 무게에 눌려, 자음과 모음이 가져다 주었던 마법같은 순간들을 잊었습니다. 줌바에서 만났던 그녀를 오늘 피트니스 복싱 프로그램에서 만났는데 얼마나 반갑던지요. 통성명을 하고, 서툰 발음으로 서로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두 딸을 혼자 기르며 여성신학에 관한 논문을 쓰는 제 친구는 아홉살이나 많았던 남편과의 너무 이른 결혼이 전혀 행복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자신의 딸들이 비혼을 택해도 지지할 거라며, 자신은 조언만 해줄 거라고 얘기하네요. 주변 권사님들께 수소문해서 논문의 핵심 인물 중인 한 목사님의 아내 분을 주일 오전에 라인마인교회에서 뵙기로 했습니다. 아흔이 넘은 사모님 대신 따님과 긴 통화를 하며, 더 늦지 않았음에 감사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연말에 사임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그 쓸쓸한 시간에서 벗어날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20241107 재이.
Da sprach ich: Weh mir, ich vergehe! Denn ich bin unreiner Lippen und wohne unter einem Volk von unreinen Lippen; denn ich habe den König, den Herrn Zebaoth, gesehen mit meinen Augen Da flog einer der Serafim zu mir und hatte eine glühende Kohle in der Hand, die er mit der Zange vom Altar nahm, und rührte meinen Mund an und sprach: Siehe, hiermit sind deine Lippen berührt, dass deine Schuld von dir genommen werde und deine Sünde gesühnt sei. Und ich hörte die Stimme des Herrn, wie er sprach: Wen soll ich senden? Wer will unser Bote sein? Ich aber sprach: Hier bin ich, sende mich! (Jesaja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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