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록] §3 물어라, 교회야

팔츠 주의 특산품인 리슬링 와인으로 세례를 줄 수 있을까? 란다우의 작은 수양관에 모여 4박 5일간 집중 강의(Predigerseminar)를 듣고 있는 첫째날 오후. 변호사가 던진 이 질문에 다들 약간은 황당해하면서도 재미있는 표정들이다. 우리가 모르는 척 하고 있지만, 사실 교회는 수많은 질문으로 축적되어온 공간이자 유기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법은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가이드 라인 정도가 아닐까. 가톨릭처럼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체제가 아니라 해도, 루터의 나라인 독일에서 개신 교회는 규율과 체계를 좋아하는 모습 그대로를 닮아 있다. 교회법은, 국가 교회라는 개념을 빼고는 납득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다.

2차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비카들은 수업을 들으면서도 계속 구술 시험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 물었다. 규정과 사례들 사이에서, 학생들은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서로 무엇이든 묻고 답하면서, 확인하게 되는 한계와 배움. 그 둘이 교차하는 지점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중이다. 외국인인 나만 어려운 게 아니다. 이른 해가 지고 창 밖이 캄캄해지니 다들 피곤한 얼굴들이다.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숙소로 올라가던 계단에서 너무 어렵다고 한숨을 쉬던 학생들 등 뒤에서, 내가 더 큰 한 숨을 쉬었더니 함께 웃는다. 결혼식, 당회, 총회, 장례, 세례식 때의 후견인 제도까지 교회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예식과 사례와 법 조항들이 난무했으니 그럴만하다.

문득 신대원 때 언제 교회 헌법을 들었나 싶어 옛날 성적표까지 뒤적거렸다. 기억이 나질 않았다. 기억나는 건 총회 헌법책을 공짜로 주면서 생색을 내던 강사 목사님뿐. 그저 목사고시를 위한 쪽집게 과외 같았던 수업. 숫자에 동그라미를 치고, 해당자와 비해당자를 구분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한국에서 사법시험을 공부했던 내게, 오늘 교회법을 가지고 신랄하게 토론하는 독일의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약간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동시에 독일에서 법을 공부했으면 목사가 아니라 변호사를 했겠네 싶은 마음이 잠깐 들기도 했었는데.. (이건 저 위에 계신 분께는 비밀. 😁)  

하루 8시간을 꼬박 앉아서 집중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텐데 다들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잘 버틴다 싶다. 예민한 이야기들도 많았다. 세례식의 후견인이 나치이거나 AfD 같은 극우주의자라면 목사가 거절할 수 있는가? 국가법이 바뀌면 교회법도 그에 맞춰 빠르게 변화할 수 있는가? 결혼을 정의 내리는 국가법의 규정이 달라졌다고 하자. 독일에서는 2002년에 시민 결합(Partnerschaft)이 합헌으로 인정되었다. 이 경우, 교회법은 얼마나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한국에서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다양한 의견과 함께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어떤 권한을 가졌는지도 중요하지만, 권한의 범위를 누가 결정하는지도 중요하다는 것. 규정의 헛점을 파고드는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작년 연말, 당회가 없는 이민 교회에서 운영 위원회로 모였던 일이 떠올랐다. 한 분 밖에 없는 장로님의 은퇴가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안수 집사님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본인들이 장로가 되고 나면, 안수집사급으로 올라올만한 남자 집사들 숫자를 세면서 몇 명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임을 앞에 두고 있었지만, 손을 들어야했다. 권사님과 여자 집사님들도 우리 교단에서는 장로나 안수집사로 임직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를 했다. 금시초문이라는 듯 나를 놀랍게 바라 보던 교포 2세 집사님. 그제서야 목사님이 교단 헌법을 설명해 주었다. 법은 중요하지만, 그 법을 누가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오늘도 강의를 하던 변호사가 예전 법 조문을 설명하다가, 그 당시에는 여성 목회자가 없었다는 얘기를 했더니 바로 여학생들이 팩트체크를 한다. 여성 목사 안수가 50년대 부터 시작됐는데 무슨 말이냐며, 머쓱해 하던 변호사를 놀리던 학생들. 문득, 이런 모습을 듣고 보려고 여기 앉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탄절과 대림절을 앞두고 가장 바쁘게 흐르던 11월. 그런 와중에도 멘토 목사님은 당회 준비 모임과 당회에 참관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언어나 분위기, 문화와 같은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뜻이리라.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지난 6년간 독일에서 유학생으로 살며 어렴풋하게 알던 독일과 독일 교회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많이 또렷해졌다. 내일은 또 어떤 초점을 맞추며 따라가게 될까. 무시무시한 교회법 수업을 듣고 무사히 살아서 돌아갈지 모르겠다며 교수님께도 엄살을 부렸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다. 물론 2차 시험 면제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 싶어, 꾹 참고 있는 중. 수요일에 이 친구들이랑 란다우 크리스마스 마켓에 나가 따뜻한 글뤼와인 한 잔 나누면 툭하고 튀어나올지도 모르겠다. 그 때까지는 잘 참아봐야지. 20251201 재이.     

20251201 @ Butenshoen Haus, Land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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