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초, 유럽 종교 학회(EuARe) 참석 겸 여름 휴가차 다녀온 로마와 아시시에서 개인적으로 기억하고 싶은 몇몇 장소들을 갈무리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가톨릭의 본산인 로마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초기 교회 공동체의 소박함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유명한 장소보다 조용히 성지순례하고 싶으신 분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로마 곳곳과 근교를 둘러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저는 학회 장소 근처였던 로마 시내 외곽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일 주일 정도 머물렀고, 하루는 근처 소도시 아시시에 기차로 다녀왔습니다.

1. 아시시 (Assisi)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시작, 지오토의 프레스코화를 실컷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2년 전, 베네치아와 파도바에서 그의 천재적인 그림을 보면서 감탄을 그칠 수가 없었는데요. 스크로베니 예배당에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관리를 위해 15-20분이라는 어마무시한 제한 속에 거의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보고 나왔던 아쉬움이 아시시에서 해갈되었습니다. 유럽 생활이 길어지면서 확실히 전세계 여느 대도시들과 비슷한 유명한 도시들보다는, 그 근처에 있는 소도시들의 매력이 훨씬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베네치아 옆의 파도바 그리고 로마 옆의 아시시처럼요. 개인적으로는 로마 여정을 고요한 아시시에서 시작해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성프란체스코 성당의 지오토와 제자들이 그린 프레스코화도 물론 압도적으로 좋았지만, 도시 전체가 주는 고즈넉함과 여유로움 그리고 산타 키아라 성당에서 알게 된 클라라 성녀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올해가 프란체스코성인의 서거 800주년 기념해라고 하니 특별한 의미가 더해졌습니다.
⏰ 로마에서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합니다.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오전 7시반쯤 출발하는 기차를 탔고, 아시시에서는 오후 4시반쯤 출발하는 기차로 돌아왔어요. 직행열차에 맞춰 일정을 짜시는게 여러모로 편합니다.
💰 기차표 편도 14.45 유로, 성프란체스코 성당과 클라라 성당 입장 모두 무료.
📍 생각보다 기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최소 왕복 5시간)이 길어서 간식거리를 챙겨가는 걸 추천드려요. 카트를 끌며 기차 내에서 장사하는 분이 계셨는데, 타 먹는 카푸치노 한잔에 5유로 드렸습니다.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아시시행 기차를 타는 플랫폼이 꽤 멀리 있어서 가능하면 일찍 역에 도착하셔야 해요. 안 그러면 눈썹을 휘날리며 뛰는 게 뭔지 경험하실 수 있게 됩니다. 아시시 내에서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되는데, 성프란체스코 성당에서 여정을 시작하고 천천히 걸으면 반나절 만에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도시입니다.

2. 프리실라 카타콤 (Catacombs of Priscilla)
카타콤 방문을 추천했던 선배 덕분에 검색으로 알게된 곳이었는데요. 알고보니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곳이라, 학회 개최일 당일 오전에 휘리릭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영어 가이드 투어에 참여했고 다같이 안내해 주는 공간들을 이동하며 설명을 들었습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자 바티칸의 관리를 받는 곳이라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됩니다. 로마 근교에서 돌아볼 수 있는 카타콤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편이고, 이 곳에 남아있는 벽화들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서 나오는 브리스길라가 이 카타콤의 주인이 아니냐는 얘기가 있는데, 가이드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더이다. 선한 목자 상이나 초기 교회 여성 리더십들이 그대로 보여지는 그림들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 벽화에, 다섯명의 여성이라니요! 우먼파워 만만세 🙋🏻‍♀️
⏰ 언어별(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가이드 투어에 맞춰 들어가면, 45분 정도로 투어를 마칩니다.
💰 목회자 할인 7유로(일반 10유로)
📍 유럽의 폭염에도 지하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얇은 가디건이나 겉옷을 챙겨가는 게 좋습니다. 벽화를 자세히 보려면 작은 망원경도 챙겨가셔요.

3. 콘스탄자 성당 (Mausoleo di Santa Costanza)
프리실라 카타콤의 가이드가 추천해 주었던 근처 성당입니다. 이 성당에도 작은 카타콤이 함께 있지만, 모자이크를 꼭 보라는 얘기만 듣고 찾아갔습니다. 판테온의 소박함 버전이라고 해야할까요. 천장을 둘러싸고 있는 모자이크가 일품! 전혀 기대하지 않고 갔다가 아주 오랜 시간 머물며 기도하고 돌아왔습니다. 아시시가 프레스코화의 명소라면, 로마는 모자이크의 대명사라고 해야할까요. 종교화에 일가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그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성베드로 성당의 황금빛 찬란한 모자이크가 아니라 초기 교회 공동체의 단순하지만 소박한 모자이크를 보실 수 있는 곳입니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점심 쉬는 시간입니다.
💰무료지만 모자이크 상에 불빛을 켜려면 1유로를 내셔야 해요.
📍조용히 묵상 기도하기 좋은 곳. 로마의 번잡함을 피하고 싶은 신앙인들에게 추천합니다.

4. 프라세데 성당 (Santa Prassede)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묻힌 곳) 근처에서 콜로세움을 찾아가다가 우연히 방문하게 된 성당입니다. 말그대로 길 가다가 뭔가 이끌리듯 들어간 성당인데, 로마에서 방문했던 성당들 중에서 제일 좋았습니다. 정교회 느낌의 바실리카 안에 작은 예배당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 예배당 사방 천장에 모자이크로 구성된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 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예배당 옆에는 기둥이 하나 유리관 안에 보관되어 있는데, 예수님이 채찍질 당할 때 묶여 있었던 돌기둥이라고 합니다. 사실 진위 여부를 떠나 저는 의심 많은 도마 같아서, 성물보다는 당대 사람들이 그려내는 그림이나 조각들에 더 마음을 쏟는 편인데 그래서 더 매력적인 장소였습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의 모자이크는 금박으로 너무 화려해서 부담스러웠다면, 프라세데의 모자이크는 누구라도 가까워지고 싶은 예수님이라고 할까요.
⏰ 12시반부터 오후 3시까지 점심 쉬는 시간.
💰 무료 입장이지만, 예배당 안의 모자이크에 불이 들어오게 하려면 2유로를 내셔야 해요. 관광객들이 많아서 누군가 내면, 다같이 보는 구조.
📍 로마 모자이크의 정수, 동방과 서방 교회가 갈라지기 전의 초기 기독교 미술의 아름다움.

5. 말타 기사단의 열쇠구멍 (Keyhole of the Order of Malta)
학회 마치고 저녁 야경을 보고 싶어서 나섰는데, 결과적으로는 아주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로마 특유의 등성이와 동산에 오르는 공원도 좋았고, 아주 작은 구멍 사이에 딱 맞게 들어 있는 성베드로 성당은 직접 눈으로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묘한 성취감이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긴 줄은 어쩔 수가 없었지만, 길거리 악사의 연주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독일 친구가 추천해 준 장소.
⏰여름 평일 저녁 일몰 무렵에 긴 줄을 섰는데, 50분 정도 기다렸어요.
💰무료, 그러나 오래 서 있을 수 있는 튼튼한 하체력 필수
📍기다림의 미학을 알면서도 무언가 딱 떨어지는 건축의 매력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6.바티칸 미술관의 현대관
바티칸 미술관과 베드로 대성당은 꼭 가이드 투어를 해야한다는 한국인들의 후기가 넘쳐서 고민을 하다 학회 시간과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공식 홈페이지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오후 12시 슬롯을 예매했습니다. 번호를 누르면 들을 수 있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신청했는데, 10번도 채 누르지 않았던 것 같네요. 워낙 사람들이 많고 가이드 투어가 넘쳐서, 이리저리 휩쓸려 가다보면 한국어, 영어, 독일어 중에 제가 선택해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붐비는 상황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이드 투어를 하지 않아서 가장 좋았다고 생각한 점은, 제가 보고 싶은 그림이나 조각상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 특히, 고흐나 샤갈의 피에타가 전시된 현대관은 관광객이 적어서 더 오래 머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후 시간 입장이라 오전에는 성베드로 성당을 온전히 누리는 호사도 있었습니다. 제가 갔던 날 새벽에 꽤 많은 양의 비가 쏟아져서 날씨 혜택이 컸지요 ☔️
⏰ 12시 슬롯에 입장해서 오후 3시까지 머물렀습니다.
💰 입장료 20유로 +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8 유로
📍 바티칸 미술관 안에서 엽서를 사서 보낼 수 있는 작은 우체국이 있어요. 펜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미리 엽서를 써가시거나 따로 펜을 챙겨 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유럽내로 보내는 엽서는 1.55유로, 아시아로 보내는 엽서는 2.55유로 였어요. 애정하는 이들에게 무사히 제 글자들이 닿기를!

* 로마 여행을 위한 작은 팁
1) 여름이라면, 작은 텀블러나 얇은 손수건을 추천드립니다. 로마 시내 곳곳에 음수대와 정수기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따로 생수를 구입하지 않아도 충분히 수분을 섭취하실 수 있습니다. 얇은 손수건을 적셔서 목덜미나 손등을 적시면 유럽의 폭염이 아주 잠시나마 누그러집니다.
2) 공연을 볼 때 쓰는 작은 망원경도 추천합니다. 로마에서 유명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천장이나 높은 벽 위에 있기 때문에, 왠만한 시력으로는 자세히 보기가 어렵습니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경우도 많구요. 몇 년 전, 베네치아 여행에서 독일 교수님이 쓰시는 걸 보고 이번에 챙겨왔는데 톡톡히 잘 썼습니다. 그 유명한 천지창조 그림에서 두 손가락이 만나지 않는 것도 덕분에 맨눈으로 볼 수 있었답니다.
3) 애플페이나 구글페이처럼 핸드폰으로 하는 결제 수단이 편리합니다. 대중 교통은 물론, 아주 작은 마트까지 사용 가능합니다. 하지만 가끔 카드 단말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적은 금액의 현금이나 잔돈은 가지고 계시는게 좋습니다.
4) Too good to go 앱. 개인적으로 맛집을 찾아다니기보다 에너지를 얻는 음식 먹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고, 음식이 낭비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여행하면서 이 앱을 두 번 정도 사용했습니다. 근처 베이커리나 식당에서 저녁 시간에 픽업을 하는 방식인데, 양과 가격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버려지는 음식을 줄이는 일에도 동참하구요.
5) 기념품과 쇼핑. 성당이나 교회에서는 주로 엽서나 포스터를 삽니다. 냉장고 마그넷은 무겁기도 하고 비슷한 모양들이 많아 지역 서점을 들렀을 때 마음에 드는 모양이 있을 때만 사는 편입니다. 이번에는 아시시에서 타우 십자가 반지를 샀고, 로마에서는 주로 생필품들(검정쌀, 올리브유, 올리브)을 쟁여왔어요. 유럽 생활인의 생존법 😂
6) 점심 쉬는 시간 체크하기. 생각보다 점심 쉬는 시간이 길어서 보통 12시에서 3시(혹은 4시)까지 닫는 성당들이나 명소들이 많습니다. 그 시간에 점심 식사를 챙기거나 동선 상에서 방문할 수 있는 다른 대안들을 챙기는 게 시간을 아낄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밀린 일기를 썼다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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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올 여름 이탈리아가 이곳으로 피서를 왔군요!
    단정히 엮인 걸음을 따라 서울에서 로마와 아사시의 아름다움을 한 눈에 담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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