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의 축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나 다를 일이었던가. 만나야 할 사람과 만나고 싶은 사람을 가르는 일.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분별하는 일. 가야 할 곳과 가고 싶은 곳을 판단하는 일. 이 모든 게 실은 자기 정리가 끝난 후에야 가능한 것이었다. 날아오는 모든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완벽주의를 버렸을 때 오는 가벼움도 분명해졌다. 조금은 숨을 참는 연습. 한 걸음 물러서 보는 풍경. 계획에도 없던 태업으로 누리던 평화였다.

2. 세상 어디에나 권력의 불균형은 존재한다. 한쪽의 불합리함으로 다른 쪽을 택했다 한들, 그 불균형은 인간으로 사는 한 맞닥뜨려야 하는 숙명이다. 프라하의 오래된 오페라 극장, 꼭대기층에 앉아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던 무대에서 한 열 뒤로 물러앉았다. 아이스크림이 뒤집힌 것처럼 보이던 샹들리에. Studienfahrt (수학여행)이라는 명목으로 동행한 아이들은, 단 한 번의 상의도 없이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예약해 놓았다. 내내 철없는 십대들처럼 패거리로 몰려다니다가 문득 어른처럼 배려하는 척을 했다. 불편했을 것이다. 아무 말 없이 착하게 따라만 가던 이가 무리에서 살짝 떨어져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균열을 느꼈던 걸까. 눈치 없기로 유명한 녀석들이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연신 괜찮은지를 물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미 수많은 오페라를 봤다는 말이나,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야외 오페라 무대에서, 지금 이 자리보다 10배도 넘는 비싼 자리에서, <마탄의 사수>를 봤었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눈으로 보지 않으니, 열린 귀로만 들리는 대사 사이사이에 작은 노트를 꺼내 쉴 새 없이 한글을 써내려갔다. 타국에서 모국어가 갖는 힘은 특별하다. 당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모국어로 말하는 내가 있다는 사실은, 생각지도 못한 자신감의 원천이 된다. 굳이, 라고 생각했을 수많은 것들을 고집스럽게 이어가는 일. 당신의 방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나의 전 존재로 증명하는 것이다. 여기 있는 내가 다가 아니라는 말이다.

3. 못된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후진 방식이라고 단정했다. 미숙한 판단이라고 정의 내렸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꾹꾹 눌러 담은 어떤 마음들이 있었던 걸까. 시차 적응을 할 겨를도 없이 달려온 며칠 동안 조금씩 쌓인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파주에서 서울로 돌아가던 버스 안에서, 독일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조언을 구하던 참이었다. 더듬거리는 내 말을 가만히 들어주던 이가 있었다. 내가 독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과묵한 진지함일 것이다. 함부로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용수철의 자동반사처럼 튀어나오는 가벼운 인사나 미안함이 아니라,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끝내 꼭 필요한 말만 내놓는 간결한 진심. 위로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그 간격이 오히려 고마웠다. 섣부른 조언 대신 함께 고민해 주는 그 마음으로 이미 충분했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분명했고, 결국은 당사자 스스로가 가장 원하는 방식이어야 했다. 피난처가 되어 주는 일도 딱 거기까지였다. 살려준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꼭 갚겠다는 말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다 잊어도 되니 그냥 너만 잊지 말라고, 갚고 싶으면 내가 아니라 타인에게 갚으라고.

4. Ecumenical peace is false pease. 에큐메니컬 평화 대회 내내 시청 앞 도로를 시끄럽게 채우던 시위대. 성공회 성당에서 프레스센터로 건너는 횡단보도 위에서, 피켓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커다란 팻말 뒤에 얼굴을 감추고 있던 여성이 날을 세우던 순간. “두 번째로 쓴 평화에서 s가 아니라 c예요. 이왕 시위를 하시려면 제대로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말하고 돌아와 내내 통역 부스 안에서 마음이 쓰렸다. 당황하던 그녀의 표정에서, 이 자리로 격하게 내몰았을 극우 목회자가 느껴야 할 수모를 대신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쌓여가는 후레함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한 번 마이크를 쥐면 놓지 않던 시커먼 남성들. 타이틀 순으로 쉬지 않고 이어지던 축사의 향연. 현장에서 질문 하나 받지 않고 끝나 버린 북토크. 조국을 위해 봉사하라는 말을 허투루 듣지 말라던 쐐기 같은 전화. 이왕 후원할 거면 독일 교회에서 돈 좀 더 많이 보내라고 하라던 어떤 기관장. 가십이 되어 버린 누군가의 재혼. 청년과 여성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떠들면서도, 맨 마지막에 청년을 배치하고 서둘러 마무리해 버리던 기자회견장. 팔레스타인의 목소리를 지워 버린 평화 선언문.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잘 듣지 못했다고 통역 부스를 쳐다보던 시선까지.

5. 가만히 내 얘기를 듣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청년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처음 몇 해 동안 이런 건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비난에 시달렸다고 했다. 참다못해 그만두어야겠다 생각하고 담당자를 찾아갔단다. 그 자리에서, 당신이 그만두면 나도 그만둘 거라고, 변화를 만드는 건 떠난 사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정년을 채우고 은퇴한 그녀. DMZ 평화 순례를 마치는 자리에서, 남성들에게만 마이크가 주어지는 게 너무 황당해서 외국인 여성에게 순서를 양보해 달라고 진행자를 찾아갔다. 진행자에게 간신히 다음 순서를 양보받아서 그녀에게 찾아가 부탁했더니, 청년에게 자신의 마이크를 넘기란다. 너무나 익숙한 상황이지만 여성이라는 본인의 목소리보다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은 청년 앤. 목회자로 이민자를 돕는 데 한계를 느껴, 법학도로 진로를 바꾸고 이제 로스쿨 마지막 학년이라고 했다. 한반도 평화순례를 넘어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서 만난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통역을 못 들었다며 질문을 회피하던 사람에게, 방금 들은 질문을 또박또박 전달해 준 것도 앤이었다. 조언의 말미에, 그녀가 덧붙였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은 늘 있어. 네가 여기에 있어서 참 기뻐.”

6. 교단 총회나 평화 대회 통역 때문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꽃게가 제철이라 한국에 갔었다. 보슬비가 내리는 아침, 아버지와 약수터에 가서 물통 한가득 채워 오려고. 다 큰 조카들이랑 사패산 능선에 올라 도토리로 공기놀이하려고. 그 조카들한테 너네 엄마보다 이모가 더 예쁘지 않냐고 물어보려고. 엄마 손잡고 백화점에 가서 제일 좋은 향수 한 병 선물해 드리려고. 근처 사는 친구를 불러내 떡볶이랑 순대를 먹고 수요예배 드리고 다시 짜장면을 먹고 영화관에서 <가능한 사랑>을 보려고. 선배가 가르치는 수업에 찾아가 두 명의 인도 학생들과 독일 초콜릿을 나눠 먹으며, 부유해진 한국 교회와 신학에 도전해 달라고 말하려고. 북토크 마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필리핀 목사님에게 부디 젠더 감수성이 전무한 남성 신학자들을 잘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려고. 죽어 버리라는 말에 완전히 무너져 버린 한 빛나는 청춘을 건져내려고. 감정을 듬뿍 담아 팔레스타인 신학자의 목소리를 통역하려고. 후배에게 한강뷰 맛집에서 맛있는 피자를 사 먹이려고. 친구와 광나루에서 곤드레밥을 먹으려고. 동생에게 숙식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일본 여행을 제안하려고. 고향과도 같은 교회에서 애정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안아 주려고. 그리고 그렇게,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려고.

7. Sumud.

*<去年의 曲>: 이병주의 소설 제목. 부제 ‘잃어버린 청춘의 노래’

뜻밖의 기쁨, 그리고 자유. 🇰🇷
20260915 @ 향린교회,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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